선대(先代)의 한(恨)을 기억하시라
方 昌 健(一世)
사자성어(四字成語)에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는 구절(句節)이 있음을 상기(想起)합니다. 이 글귀를 풀이하면"가야 할 길은 멀고도 먼데 해는 이미 서산(西山)에 지는구나"하는 말로서,"인간의 허무감(虛無感)과 절박감(切迫感) 내지는 후회막급(後悔莫及)함을 탄식(歎息)한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글귀를 월남일세들의 비애(悲哀)에 준거(準據)하여 본다면"통일의 그 날은 요원(遼遠)한데 반하여 늙어 병들어 죽을 날 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으로 비유(比喩) 해 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우리들의 많은 선배님과 동지들이 그렇게도 갈망하는 통일을 보지 못하고 운명(殞命)을 하실 때, 원한(怨恨)에 사무쳐 눈을 감지 못하고 숨을 거두시는 모습을 대할 때마다, 나 역시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눈물범벅이 되는 때가 많습니다.
한자성어(漢字成語)에 호마이북풍(胡馬耳北風) 후조남지소(候鳥南枝巢)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글귀를 직역하면 북쪽 오랑캐나라에서 팔려온 말은 짬만 나면 반드시 귀를 북쪽 바람을 향해 기우리고, 좋은 소식이 전해 오기를 기다리고, 남쪽에서 날아온 철새는, 둥지를 틀 때에는 반드시 남쪽 가지에다 튼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잘 것 없는 금수(禽獸)까지도 자기의 고향을 그리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萬物의 靈長)이라고 하는 인간이야 이에 비할바 못 될 것입니다. 옛말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말이 있지요. 그 말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만이 그 병의 아픔을 알고 서로 동정하고 불쌍하게 여긴다는 즉 연민(憐憫)의 정이 흐른다는 것이지요.
우리 월남 일세들은 8.15해방 이후 공산주의가 싫어서 남쪽을 택한 사람들로서 공산주의의 폭정을 그 누구보다도 실태를 통하여 터득(攄得)한 사람들이므로 반공을 택한 것은 당연지사 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동병상련에 비유할 때 그것은 우리들의 당연한 당위(當爲)일 수밖에 없다 하겠습니다.
사람은 객지생활을 체험해야 비로소 고향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더욱이 분단의 아픔과 이산의 고통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이치라 할 것입니다.
우리 1세들은 비록 고향을 버리고 사고무친(四顧無親)한 이곳 以南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그들 개개인이 당한 참상은 필설(筆舌)로는 다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던 사실을 회상하건대, 우리는 잠시라도 뇌리에서 지울 수 없다 하겠습니다. 때로는 엄동설한에서의 풍찬노숙(風餐露宿)도, 때로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분연히 일어섰고 ,때로는 가족의 병고를 보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든 안타까웠든 상황, 때로는 이곳 주민들로부터의 온갖 수모와 무시 속에서도 좌절치 않고, 꿋꿋하게 감내한 그 불굴의 정신은 가상타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월남 1세들의 후예 여러분! 당시 선친들의"우선 살고 나서 보자."라는 숭고한 그 개척 정신과 집념을 치욕적이라고 치부치 말고,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선친들의 행적을 회상한다면 어떠한 난감한 일도 능히 극복하리라 믿습니다.
우리 1세들의 후예 여러분!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나의 조부모 나의 부모님을 소중히 여기고 존경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그분들께서는 입만 떼시면은"공산주의는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우리는"반공해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이다."라고 갈파하십니다. 여러분들의 수준에서 볼 때에는 논리적이지는 못하고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것 같아, 회의감과 당혹감이 교차하는 것도 있을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반공만은 실제체험을 통하여 터득한 확고한 인생철학이고, 생사결단의 의지의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선친들의 집념은 그분들의 유언이고 유지로 알고 받드는 것이 효도의 길이고, 후예로서의 도리라는 것을 명심하였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장한 후예 여러분!"고향은 나의 뿌리다"라는 의식을 저버려서는 아니 됩니다. 뿌리가 건실치 못한 식물은 곧 고사(枯死)하고 맙니다. 사람 역시 뿌리가 튼튼치 못하면 자연히 사라지고 맙니다."고향을 외면하거나 배타하는 사람은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고향이 뭡니까?" 어딘가 돌아갈 곳이 있고, 누군가 기다려 줄 곳이 진정 고향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비록 체제적인 장애로 글로벌 시대에 걸맞지 않게 잃어버린 60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고향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크나큰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은 지역에 따라 기질(氣質)이 다릅니다. 자고로 평안도 사람의 기질은 맹호출림(猛虎出林)이지요. 조선팔도(李朝時代의 道 行政體制) 사람 중에 가장 으뜸가는 자랑거리로 뽑히고 있습니다. 맹호출림을 상상하여 보십시오. 늠름한 체모 날랜 동작 백수의 왕다운 풍모 그 어느 것 하나 결함 없는 위풍당당한 동물이 아닙니까? 평안도 사람 역시 그 기질이 맹호출림 형으로 결단력, 인내심, 정의감, 포용력, 의리 등 인간의 심성을 고루 갖춘 것이 평안도 사람의 기질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부정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그만 폭발하고 마는 다혈질적으로 변모하는 병폐가 흠이라면 흠일 것입니다.
평안도 사람은 사리가 분명하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공통된 평가인 것은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그러할수록 우리는 자만치 말고 더욱 정려(精麗)하여, 평안도의 위상을 손상시키는 일이 없도록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 글 같지 않은 글을 쓰면서 회의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이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우리나라가 계속해서 시장경제에 의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지속 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체제를 허물 새로운 체제로 전환할 것인지? 혹은 이른바 실용주의 운위(云謂)하면서 포플리즘적인 체제로 일관하려는지? 예측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의 행적을 우경보수(右傾保守)계 인사들이 평가한다고 본다면 수긍할 것입니다. 반대로 좌경지보(左傾進步) 인사들이 평가한다고 가상하다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미친놈의 장난이라고 타기(唾棄)할 것이고, 이른바 중도적인 인사들이 보면 무식한 놈의 작태라고 하며 비웃을 것이 확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하잘 것 없는 글을 쓰면서"믿거나 말거나"를 소제로 삼고 싶었던 것입니다. 지면 배당이 크게 넘었으므로 이만 각필(擱筆)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