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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4 23:10

잊지 못할 고향 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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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원 구

 

其 1

천마산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리는 천마강은 남서방향으로 대하산 줄기 밑을 끼고 천마동, 동고동, 서고동, 구북동, 구창동을 굽이굽이 돌아 일령동에 이르러 고진강과 합류한다. 굽이마다 용소, 긴소, 보통소, 생소, 무당소 등 많은 소가 있다. 그중에도 가장 큰 서고동, 샘치몰에 있는 보통소에는 쏘가리가 많다.

 

내가 일곱 살 여름 방학 때로 기억된다. 어느 날 아침부터 고기 잡으러 간다고 형들이 그물을 있는 대로 꺼냈다. 삼촌 형제들도 그물을 잔뜩 걸머지고 왔다. 나도 따라 나섰다. 보통소를 그물로 훑는다는 것이다. 상류는 좁고 깊은 반면 하류는 넓고 얕았다.

 

하류에 그물 몇 틀을 이어 이중으로 쳐놓고 상류 가마소부터 훑기 시작했다.

 

가마소는 가마솥과 같이 양쪽은 바위로 둘려 있으며 물이 매우 깊고 여울 쪽은 바닥이 바위였다. 그 위에 삼각돌이 있는데, 그 밑이 쏘가리의 명당인지 언제나 큰놈들이 떠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지릿대와 망치로 돌을 때리며 그물을 삼중으로 훑기 시작했다. 깊은 데는 두 길도 넘었다, 여기를 헤엄쳐 흝어흝어 하류에 쳐놓은 그물 가까이 와서 깊은 곳의 그물을 합쳐서 얕은 곳으로 끌어냈다.

 

이를 두고 물반 고기반이라는 말이 적절하리라. 우리들은 쫓고 쫓기고 야단법석들이었다. 형들은 반두로 뜨고, 고기들은 팔짝팔짝 뛰며 숨을 곳을 찾았다. 신나게 고기를 쫓다가 주저앉아 헐떡이는 다리사이로 물고기들이 마구 스며들며 꼼지락대는 것이 간지러웠다. 나중에는 그것들을 주어 담으면 되었다.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야 철수집으로 갈 때는 자기 집 그물(하얀 그물)을 자기가 메고 갔다. 잡은 쏘가리가 스물여섯 마리인데 삼촌 형제가 그중 스물다섯 마리를 가져가고, 가장 큰 쏘가리 한 마리를 나와 삼촌이 낑낑대고 메고 갔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 가끔 추억을 되새길 때마다 떠올리곤 한다.

 

 

其 2

고향에서 나를 친동생 이상으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믿어주던 분이 계셨다.

 

그분에게 가장 귀한 것은 총이라고 생각된다(그분이 아끼는 총은 ISA 연발식 일제 총이다). 그의 손재주는 다른 사람은 감히 따라갈 수 없을 듯 싶다. 무슨 기계든 주변에 있는 것은 못 고치는 기계가 없었다. 가지고 있던 총이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총신을 12~13센티 늘렸고, 자전거도 타이어 안쪽을 자동차 튜브로 돌려 땠다.

 

그분은 키가 6척에 몸무게는 120킬로였다. 그분은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며 따라다녔던 韓成文 장로님이시다. 그분께서 그렇게 아끼는 총을 다른 사람에게는 빌려 주지 않으면서도 나한테는 언제든지 쏘라고 빌려주곤 했다. 어느 해인가 아예 봄부터 우리집에 맡겼다. 가끔 물닭(뜸부기) 사냥을 하려오시면 길가 큰 들메나무 밑에서“익도……”라고 한마디 불으면 그 목청이 얼마나 우렁찬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총을 들고 달려나갔다.

 

“저기 물닭이 있어 내가 저 논두렁에서 목잡고 있을 터이니 저 쪽에서 몰라우.”

 

나는 멀리서 어슬렁어슬렁 대면서 빨간‘맨드라미’가 벼포기 사이로 보이나 살살 살피면서 뚝을 향해 다가갔다(뜸부기는 낮은 뚝을 넘을 때면 반드시 머리를 가만히 내밀어 살펴보고 낮은 자세로 빠르게 넘어가는 습성이 있다). 내가 신호를 보내자 잠시 후,‘쨍’소리와 함께‘물닭’이 펄떡 뛰더니 뒤로 퍼덕퍼덕 뒤집어졌다(어떤 날짐승이든 머리에 맞으면 대개는 뒤로 뒤집어진다). 물닭에 장로님의 총알이 명중한 것이다.

 

나도 낚시를 무척 좋아하지만 그분께서도 무척 좋아하셨다. 천마산 근원지에서 대하동으로 흘러 큰 저수지(대하저수지)로 높이가 25미터 수문이 23개로 큰 물둥지(저수지)를 이루고, 여기서 대하산을 뒤로하고,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 고진강인데 이 줄기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삼봉동에 이르러 생소라는 큰 소(넓이 약 150미터, 거리는 약 삼사백 미터)가 있다. 그곳은 북으로는 모래사장이고 남쪽으로는 기암절벽이 있어 경치가 참 아름답다. 바위에는 바위비들기가 많고 소에는 각종 물고기가 많지만 특별히 큰 잉어나 눈치가 많았다. 여기에서 장로님께서는 일년에 몇 번씩‘까낚’이라는 낚시를 즐겨하셨다. 이 낚시는 보통 공을 드리는 낚시가 아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밑밥을 정해진 자리에 던져준다. 밑밥은 진흙을 잘 개어서 모래에 묻어 3일간 삭히고 볶은 콩가루와 왕지렁이를 쓴다. 진흙을 계란 크기만큼 빚을 때 지렁이를 한 마리씩 넣되 조금씩 보이게 빚는다. 그리고 콩가루에 굴려 꼭꼭 뭉쳐서 던짐채에 담아 던졌다. 이렇게 매일 일주일정도 하고 낚시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밑밥 주는 기간에 가끔 총을 가지고 가 비둘기 사냥을 하는데 특이한 것은 그 기암절벽에 소나무가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매달려있는 듯 여기저기 크고 작은 나무사이로 수많은 비둘기가 구구대며 들락거린다. 여기는 배를 타지 않고는 접근할 수 없었다. 배를 살살 저어 벼랑 밑으로 다가가 겨냥하면 작은 배가 흔들려 명중하기 어려운 조건이지만, 장로님은 거의 백발백중이다.‘뺙’소리와 함께 수십 마리 물닭이 따다다닥 일제히 날아오른다.(‘뺙’소리는 물닭이 정통으로 맞았을 때의 공기총소리) 그중 한 놈이 날개질에 점점 힘이 떨어지더니 그대로 물위에 퍽 떨어지는 것이다. 배를 저어가서 건져보면 틀림없이 가슴이 뚫렸다.

 

드디어 낚시를 하는 날! ‘까낚대’는 길지 않았다. 낚싯대 끝이 잘 보이게 하기 위해 흰 닭털을 달고 마치 방울낚시처럼 원 줄은 살려 놓고 낚시에 지렁이를 끼운 다음 밑밥 줄대와 똑같이 던졌다. 그리고는 후줄에 연결시켜 세워 놓는다. 잠시 후 어신(漁信)이 왔다. 톡톡, 톡톡……, 지금 고기가 흙덩이를 꿰는 것, 순간 획! 낚싯대를 끌고 갔다. 하지만 후줄이 있기에 안심이다. 딱 잡아채면 묵직한 놈이 꿈틀꿈틀, 그때부터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번은 아침에 어찌나 큰 놈인지 줄다리기를 했다. 배를 타고 끌려 다니는데 그 시간이 등교시간이라 학교를 가던 학생들이 발걸음을 멈췄다.“큰 구경거리다. 고기가 배를 끌고 다니다니!!”아마도 이삼십 분은 걸렸으리라. 간신히 끌어내는데 무게가 큰 돼지 뒷다리 정도다. 스물 너 댓근은 되었다. 보는 사람마다 저렇게 큰고기는 처음이라고 입을 딱 벌렸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고향! 그 아름다운 산과 강! 살아서 언제 다시 고향 땅을 밟아 보는 꿈이 이루어 질 것인지!

 

오늘도 간절히 기도할 따름이다. 내가 한 장로님을 더 존경하게 된 것은 작년 2004년 9월 L,A에 갔었을 때였다. 고향 동료를 통해 장로님을 방문했는데 원래 월요일에 만나려고 했지만 월요일에는 항상 가시는 곳이 있다고 하셔서 약속을 미루어 만났다. 후에 알고 보니 매주 월요일은 먼저 가신 아내의 묘소에 가는 날로 정해 놓고 계시다는 것이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뵌 장로님은 깊은 신앙심과 하나님 말씀으로 충만하셔서 믿음 안에서도 존경을 갖게 하는 너무나 은혜로운 모습이셨다. 구십이 넘으신 고령이시지만 허리가 좀 굽으셨을 뿐 정정하신 모습을 볼 수 있어 너무 반갑고 감사했다. 한국에 오기 전 한번 더 뵙고 싶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았다. 다시 뵐 수 있을지……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운 내 고향과 함께 지냈던 고향사람들에게 대한 기억은 점점 더 선명해져가고 있다, 그립고 찾아가 보고 싶지만 내 고향과 지인들은 이런 그리움을 담은 글이나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오늘도 생각하면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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